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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레시피

외신에 소개된 막걸리, 소주의 그늘에서 벗어나 도약하고 있는 막걸리의 위상

by tekjiro05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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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섭 교수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수업 후 저렴한 술집에 가서 가능한 한 많은 막걸리를 마시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사람이 술을 먹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있죠?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막걸리는 우유처럼 탁하고 종종 달콤한 맛이 나지만, 그 당시 김 교수와 친구들은 맛이 아닌 가격 때문에 막걸리를 선택했습니다. 1989년, 김 교수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막걸리 반 갤런의 가격은 약 40센트였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놋쇠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각각의 놋쇠 잔에 따라 마셨습니다. 

현재 서울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김 교수는 10년 동안 막걸리 양조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처음 접했을 때의 막걸리는 신맛과 쓴맛이 강해서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고 회상합니다. “여성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맥주를 마셨지만,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막걸리를 마셨죠.” 막걸리는 그 당시 세련되지 않은 이미지 때문에 여성들을 감동시키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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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후, 김 교수의 기억 속에서 평범했던 막걸리는 서울의 술집에서 젊은 창업자들과 양조업자들의 손에 의해 다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막걸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된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라고 김 교수는 말합니다. 김민규씨는 막걸리 변화를 주도한 양조업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2009년에 프리미엄 막걸리 양조장 복순도가를 설립했습니다. 

김민규의 금주를 지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그의 계획에 반대했으며, 특히 뉴욕 쿠퍼유니언에서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가문의 재산을 5년 동안 지원한 후여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화가 나서 막걸리 양조에 쓰이던 항아리를 부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김민규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할머니의 막걸리 레시피의 힘을 믿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남동부의 양산에 있는 할머니의 농장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할머니는 반쯤 찐 쌀에 직접 만든 누룩과 물을 섞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혼합물이 발효되어 막걸리가 되는 동안 조용한 거품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가장 소중한 기억은 할머니가 완성된 막걸리를 이웃들에게 나눠준 후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던 장면입니다. 

그는 가족에게 양조는 그에게 있어 건축의 연장선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건축 훈련을 적용해 브랜딩, 마케팅 자료, 양조장의 디자인을 직접 설계했고, 어머니가 막걸리를 양조하여 첫 번째 복순도가 막걸리를 완성했습니다. '도가'는 양조장을 의미하며, '복순'은 김민규의 어머니 이름입니다. 그 시기는 매우 적절했습니다. 막걸리는 약 100년간의 어두운 시기를 지나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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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역사

막걸리는 ‘대충 걸러낸 술’이라는 뜻의 ‘막’과 ‘걸렀다’는 뜻의 ‘걸러’를 합친 말입니다.

막걸리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광제물보’라는 백과사전에서였지만, 이 탁한 술은 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 초의 기록 중 하나는 막걸리가 한국의 모든 지역에서 소비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막걸리는 한국 문화의 일부이며, 한국인들의 술입니다.”라고 김경섭 교수는 말합니다.

막걸리가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그 단순함에 있습니다. 찐 쌀, 누룩, 물을 섞어 항아리에 넣고 몇 주 동안 발효시키면 됩니다. 한국의 많은 가정에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레시피로 막걸리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20세기 초반 일본의 식민 지배는 많은 가내 양조업의 종말을 불러왔습니다. 식민 정부는 가내 양조업자들을 표준화된 산업 주류업체로 대체했습니다. 모든 주류 제조에는 세금이 부과되었고, 개인 소비용 주류조차도 면허가 필요했습니다. 

몇 가지 대량 생산된 술이 시장을 장악했고, 1934년에는 가정 양조가 불법화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은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새 정부는 주류 생산을 엄격히 통제하는 정책을 계속했습니다. 1960년대에 식량 부족이 심화되면서 막걸리의 주재료인 쌀을 주류 제조에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제조업체들은 밀과 보리를 대체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고, 막걸리의 인기는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에탄올을 희석해 만든 소주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경제가 나아지고 쌀 공급이 소비를 초과하자, 1989년에 쌀을 사용한 주류 제조 금지가 해제되었고, 1995년에는 가정 양조가 다시 합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전통이 사라졌습니다. 

막걸리의 부흥

막걸리 양조의 잃어버린 예술을 되찾는 데는 박록담 같은 선구자적 연구자들의 공이 큽니다. 박 연구자는 30년 동안 전국을 돌며 막걸리 레시피를 수집하고 옛 양조법을 복원했습니다.

정부 또한 전통 주류를 자랑스러운 유산이자 잠재적으로 수익성 있는 산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016년, 정부는 양조 탱크 크기 요건을 5,000리터에서 1,000리터로 낮추어 소규모 양조장들이 알코올 음료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전통 주류에 한해 온라인 판매와 직접 배송이 가능해졌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이 술집과 식당에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막걸리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판매는 급증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막걸리 시장은 52.1% 성장한 반면, 전체 주류 시장은 1.6% 감소했습니다. 

김경섭 교수의 막걸리 수업에서는 절반이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인데, 그중 다수는 30대 이하의 여성들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수업의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사람들이었으며, 막걸리를 취미로 양조하려는 이들이었습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막걸리 양조 면허 소지자 수는 43% 증가했습니다. 

김 교수는 막걸리 양조장이 다른 종류의 술 양조장보다 훨씬 쉽게 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맥주 미니 양조장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장비 비용은 약 2억에서 3억 원(약 15만 5천 달러에서 23만 3천 달러)이지만, 막걸리 양조장 설비는 1천만 원(약 7,800달러)에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3시간짜리 수업 네 번만 들으면 대형 마트에서 파는 막걸리보다 훨씬 맛있는 술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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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ol Company 시음 세션에 참여한 사람들이 잔을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로 나아가는 막걸리

호주 시민인 줄리아 멜러는 원래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에 막걸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더 술 컴퍼니'라는 사업을 운영하며, 막걸리 수업과 양조장 개업을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객은 해외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업이 팬데믹 동안 4배로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고객들은 미국, 싱가포르, 덴마크와 같은 나라 출신이며,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 디아스포라(해외 거주 한인)입니다. "이분들은 한국 사람들이 막걸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그걸 자신들의 나라로 가져가고 싶다는 영감을 받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막걸리는 정말 특별하고 흥미로웠어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건 드문 일이니까요." 멜러는 막걸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만남을 주선했고, 대부분의 자료가 영어로 제공되지 않아서 스스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멜러는 막걸리가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집에서 만들기 굉장히 쉬워요. 그냥 쌀과 누룩(효모)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막걸리를 전파하는 것은 단순한 사업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건 사라질 뻔한 무언가를 되살리는 일입니다.”라고 멜러는 말합니다. 

김민규 씨는 올해 막걸리가 미국과 오스트리아에 수출될 예정이며, 다른 서구권 바이어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막걸리는 이미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2000년대 중반 한류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유명해졌습니다. 당시 K-드라마와 K-팝의 성공이 김치와 전통 술과 같은 다른 문화적 상품들이 해외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국 소비자들은 자연 발효를 건강하고 유기농적이며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그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술이에요."라고 김민규는 말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아시아를 넘어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막걸리도 이 흐름을 타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막걸리의 세련된 변신

막걸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한국의 주류 시장은 여전히 소주와 맥주가 지배하고 있으며, 이들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김민규는 막걸리 제조업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가 막걸리가 노인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대중의 인식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광고와 마케팅은 대부분 이 인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 광고에서는 깔끔하게 면도한 머리와 눈썹 피어싱을 한 남성 모델이 막걸리를 샴페인 잔에 정성스럽게 따르고 있습니다.

막걸리와 어울리는 음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도 또 다른 도전 과제입니다. 한국 문화에서 술은 거의 항상 특정 음식이나 안주와 함께 소비됩니다. 막걸리와 함께 곁들여지는 전통 음식은 '전'입니다. 전은 양념한 밀가루 반죽에 고기나 채소를 넣어 부쳐낸 한국식 전통 부침개입니다. 

"파전 한 입 먹고 시원한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면 입안이 개운해져 다시 파전의 맛을 제대로 즐길 준비가 됩니다."라고 김경섭 교수는 말합니다. 막걸리와 전의 조합은 특히 비 오는 날에 인기가 많습니다. 기획재정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편의점 체인에서 비 오는 날 막걸리와 전 재료의 판매량이 급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민규는 프리미엄 막걸리는 다양한 맛과 발포성, 그리고 진한 풍미 덕분에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짜장면과 막걸리를 함께 마시고, 아이스크림과도 잘 어울려요. 발효된 술이기 때문에 다른 발효 음식들과도 잘 맞아요. 저는 김치나 맛있는 치즈와 함께 먹는 것이 정말 맛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김민규는 덧붙였습니다. 

최근 복순도가 막걸리는 서울의 트렌디한 합정동에 있는 한 가스트로펍에서 메인 주류로 제공되었습니다. 스타일리시한 바텐더들은 막걸리를 스템리스 와인잔에 능숙하게 따랐습니다. 고객들은 주로 젊은 직장인들이었으며, 힙합 음악에 맞춰 여유롭게 막걸리를 음미했습니다. 가죽으로 제본된 메뉴에는 소고기 타르타르와 함께 여러 프리미엄 막걸리 브랜드들이 나란히 소개되었습니다. 

테이블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바텐더가 술을 따를 때마다 막걸리의 맛과 원산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들은 후 신중하게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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